풍수

home dot 자아가쓰는글 dot 풍수
노거수을 보면서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08-10-14
  • 조회수 2586

노거수는 크고 오래된 나무를 말한다.
오래 살기 위해서는 살아가는데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며 최소한 살기에 힘든 조건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볼수가 있다.
여기에 노거수라 할 만한 나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적어 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일본 가고시마의 야꾸시마섬에 있는 나무로 약 7000년을 살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 2~3000년 정도된 나무들과 숲을 이루고 있는데 양질의 토양과 적당한 수분을 갖춘 곳이라 한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화이트 산에는 수천년 씩 된 메두살레라는 나무가 있는데 주변에는 황량하고 자갈이 널려있으며 크고 작은 메두살레 나무만 군데군데 보일 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4600년 된 소나무가 있는데 주변 일대는 석회질이 많은 메마른 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용문산 은행나무는 1100년 쯤으로 추산하는데 용문사 앞 산비탈에 자라고 있다.

전국 어디인들 노거수라면 빠뜨릴수 없는 것이 느티나무이다. 산기슭, 골짜기, 마을입구등 흙이 깊고 진한 땅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울릉도에는 향나무가 많은데 2500년 된 향나무가 바위위에 올라앉은 모습은 우리 눈에는 악조건으로 보여도 향나무에겐 살기에 편한 환경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목에는 600년 쯤 되는 정이품송이 있는데 요즘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 산 소나무이니 그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는 환경이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수가 있는데 앞의 미국 소나무(4600년 된 소나무)에 비하면 그 또한 좋은 환경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심하게 말하면 그동안 간신히 버텼다고 할수도 있겠다.

서울 신림동의 굴참나무는 약1000년 쯤 산 것으로 추정하는데 굴참나무는 산허리의 양지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인천 신현동에는 500년 정도된 회화나무가 살고 있다.

노거수가 살아가는 환경이 크게 다름을 알수 있다.
각각의 종류와 각각의 개체에 따라서 최상의 환경이 오래 살아남을수 있는 조건이라고 한다면 자기 마음대로 옮겨 다닐수 없는 나무의 입장에서는 맨 처음에 어디에 뿌리를 내렸느냐에 따라서 오래 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즉 뿌리를 내리게 된 그 곳을 나(我)인 각 종류의 나무가 얼마만큼 만족스러운 환경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좋은 환경을 찾아서 마음대로 옮겨 다니며 살수있다.
어떤 사람은 앞이 툭 터져서 시원한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앞만으론 부족하여 사방이 탁 트인 곳을 좋아하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좌우가 균형되게 감싸고 앞산이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높이로 나를 보고 조아리는 듯한 곳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 사물로 부터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의 표상이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십승지는 속으로 속으로인데 반해서 서양의 성들은 대체적으로 사방이 확트인 산 정상에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사람이 늙어지면 자식들 있는데서 이런 말들을 한다.
나는 죽으면 재로 만들어 동해바다에 뿌려 다오. 고기밥이 되어 태평양도 가고 대서양도 가고 싶구나.
나는 죽으면 재로 만들어 **산 높은 곳에 뿌려 다오. 산 아래 넓은 곳을 굽어보면 참으로 시원할 것 같구나.
나는 죽으면 땅에 고이 묻고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들을 많이 심어 화려하게 해주렴.
어떤이는 나무 밑에 뿌려서 나무의 영양이 되고 싶다고 하고, 어떤이는 냉동인간으로 만들어서 영원히 보존해 달라고도 한다.
결국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얘기다.
이렇듯 죽어서까지도 염려를 하는데 살고있는 사람 개개인이 자기의 느낌에 좋은 영향을 받는 곳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 인심이 그렇지 못하여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 문제이지 원론적으로는 당연히 그렇다는 말이다.

따라서 풍수가 별것이 아니다.
주체인 내가 어떤 환경과 조건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며, 편안하게 생각하고 즐길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풍수적 이론으로는 고층아파트에는 지기(地氣)가 미칠수가 없으니 5층이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답답한 도심생활에서 집에 있을 때만이라도 넓은 시야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요즘의 고층주상복합아파트가 그렇게 편하고 시원할수가 없을 것이다.

마음대로 움직이며 살수 있는 인간에게 풍수는 주체인 내가 편한 곳을 찾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풍수적 이론에 얽매인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나(我)라는 주체가 받아들이는 마음의 움직임이 기준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주의 기운도 내가 느끼는 것이며 땅의 기운도 내가 느낀다.
다가오는 기운은 같은 것이라 해도 내가 느끼는 그 느낌은 여러면에서 다른 사람들의 것과 같을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에게는 즐거움의 느낌이 되어 나타나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짜증스럽고 불편한 느낌이 되어 나타난다.

다만 풍수적 이론들은 개개인의 느낌이나 문제들을 확인시켜 주는 나침반과 같은 도구이며 나침반을 이용해서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느냐는 문제는 주체인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감정과 느낌이 각자 다른 인간은 어떤 사람은 느티나무일수 있고, 또 다른 어떤이는 은행나무일수도 있고 소나무일수도 있다.

풍수가 개개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이 풍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산 사람의 풍수는 산 사람 개개인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아字我 적음.

목록





이전글 死後 처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으로
다음글 현대인과 비보풍수